고려왕조 계보도, 가계도 그리고 고려 왕 계보
고려는 918년 왕건이 즉위하면서 건국되어 약 475년간 한반도를 통치한 왕조입니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며 새로운 질서를 세웠고 이후 고려는 여러 정치·사회적 변동을 겪으면서 34명의 국왕이 왕위를 잇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 왕조 계보도와 고려왕의 가계도 구조, 각 시기별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고려 건국의 배경과 왕조 출발
고려왕조는 후삼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성립되었습니다. 왕건은 본래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또는 태봉) 체제에 있던 호족 출신으로, 궁예가 폭정을 일삼자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왕건은 신라·후백제를 차례로 병합하며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했고, 고려라는 국가를 세워 중앙집권형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왕건이 창건한 고려는 왕실인 왕씨(왕건 일가)를 중심으로 호족세력과 문벌귀족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안정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문벌귀족의 힘이 커지고 무신정권·외세간섭 등으로 인해 왕조의 지위와 구조도 변화하게 됩니다.
고려 왕조 계보를 이해하는 4가지 시기
고려의 왕들은 크게 다음 4가지 시기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 초기 왕권 강화기 (태조 ~ 성종) : 왕건 이후 왕권을 확립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한 시기
- 중기 문벌귀족 사회 형성기 (목종 ~ 인종) : 문벌귀족이 중앙사회를 주도하고 왕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
- 무신정권기 (의종 ~ 충렬왕 이전) : 무신의 힘이 커져 왕권이 흔들리는 시기
- 원 간섭기 및 고려 말 개혁기 (충렬왕 ~ 공양왕) : 외세인 몽골(원) 간섭기와 고려 말 개혁 시도가 병존했던 시기
이 구분은 계보와 가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며, 아래에서는 각 왕을 연도 순으로 정리하고 특징을 덧붙이겠습니다.
태조 왕건부터 성종까지
태조 왕건 (918년 건국, 재위 918~943)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창건한 인물입니다. 태조 즉위 후 호족·6두품 세력을 융합하고, 수도를 개경(開京)으로 정하며 새로운 중앙집권적 왕조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초대 왕으로서 왕실의 혈통을 정비했고, 이후 왕권 확립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혜종 (재위 943~945)
태조의 둘째 아들이며 재위 기간이 짧았습니다. 왕권보다는 왕실 내부 권력구도 안정화와 왕권 계승 기반 마련이 중심이었습니다.
정종 (재위 945~949)
태조의 셋째 아들로 즉위하였고, 군사력을 강화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왕권이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전의 과도기적 왕이었습니다.

광종 (재위 949~975)
왕건의 넷째 아들이며, 노비안검법을 실시하고 과거제를 도입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제 확립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경종 (재위 975~981)
광종의 아들로 즉위했으며, 왕권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혼란이 발생하던 시기였습니다. 왕권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종 (재위 981~997)
왕권을 보다 안정화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중앙관제와 유교적 통치체계를 정비하였으며, 왕권과 문벌귀족간의 조율을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다.
목종부터 인종까지

목종 (재위 997~1009)
성종의 조카로 즉위했으며, 군부 쿠데타로 인해 폐위된 왕입니다. 왕권이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종 (재위 1009~1031)
목종 폐위 뒤 즉위했으며,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전쟁 경험이 있는 왕입니다. 왕권이 외부 위협을 계기로 재강화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덕종 (재위 1031~1034)
현종의 아들이며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았습니다. 왕세제 문제 및 문벌귀족 내부 갈등이 두드러졌습니다.
정종 (재위 1034~1046)
덕종의 형이며 문학과 학문 진흥에 힘쓴 왕입니다. 왕권은 안정적이었으나 문벌귀족의 사회적 지위가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문종 (재위 1046~1083)
고려 중흥기의 대표적 국왕으로 평가됩니다. 유학 장려와 문화적 중흥을 이루었고, 문벌귀족 중심의 사회 형태가 고착돼 가는 시기였습니다.
순종 (재위 1083)
문종의 아들로 단기간 재위하였고, 왕권은 다시 위축된 양상을 보였습니다.

선종 (재위 1083~1094)
외교적·내정적으로 안정된 시기로 평가되나 문벌귀족의 정치적 비중이 더욱 커졌습니다.
헌종 (재위 1094~1095)
재위 기간이 매우 짧고 병으로 퇴위한 왕입니다. 왕권이 내부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숙종 (재위 1095~1105)
화폐 발행을 시도하고 수도 남경(현재의 서울) 남경계획을 세우는 등 정책적 변화를 모색했던 왕입니다. 그러나 외부 위협과 내부 세력 균형 문제로 왕권이 쉽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예종 (재위 1105~1122)
국자감 정비와 유학 중심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정치·문화적으로 융성한 시기였습니다. 인종에 이르기까지 문벌귀족 중심의 안정된 권력구조가 이어졌습니다.

인종 (재위 1122~1146)
문벌귀족 김부식 등이 역사서 편찬을 주도(삼국사기)하였으며 묘청의 난 등 외부·내부적 도전이 나타나 왕권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의종부터 고종까지 (무신정권기)

의종 (재위 1146~1170)
문벌귀족 중심 체제였으나 내부 부패와 군사세력의 증가로 무신정변이 발생한 왕입니다. 왕권이 정변으로 넘어가는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명종 (재위 1170~1197)
무신정권이 본격적으로 집권한 시기이며 정권의 실제 주도세력이 군사세력으로 이동했습니다. 왕은 형식적 존재로 전락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신종 (재위 1197~1204)
최충헌이 등장하며 정치실권을 행사한 시기입니다. 왕권은 더욱 약화되고 권문세족과 무신의 권력이 교차하였습니다.
희종 (재위 1204~1211)
최씨 무신 정권을 견제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왕권이 더욱 축소된 상태로 접어듭니다.
강종 (재위 1211~1213)
허수아비 왕으로 평가되며 군사·정치권력이 왕이 아닌 무신 및 귀족에 집중되던 시기입니다.
고종 (재위 1213~1259)
몽골의 침입과 지속된 전쟁으로 왕조가 위기를 맞은 시기입니다. 1232년에는 강화(開城) 천도가 이루어졌고, 이후 몽골의 압박 아래에서 왕권이 큰 외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원종부터 충정왕까지 (원 간섭기)
원종 (재위 1259~1274)
몽골(원나라)과의 강화 체결로 ‘부마국화(附馬國化)’ 체제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왕권보다 외세의 영향이 커지면서 고려 왕조의 자율성이 축소되었습니다.
충렬왕 (재위 1274~1308)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권문세족이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한 대표적 왕입니다. 왕권은 명목에 머물렀고 군사·정치적으로 부패가 심화되었습니다.
충선왕 (재위 1298·1308~1313)
개혁을 시도했으나 권문세족과 외세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왕권 회복보다는 내부 갈등이 더 심해졌습니다.
충숙왕 (재위 1313~1330·1332~1339)
정치 부패가 심화되었고 왕권은 더욱 약화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충혜왕 (재위 1330~1332·1339~1344)
두 차례 퇴위되는 등 왕권이 명목에 불과했던 시기입니다.
충목왕 (재위 1344~1348)
유소년 즉위 후 단명했고 왕권이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충정왕 (재위 1349~1351)
고려 말기의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이며 왕조 내부의 개혁과 외세 압력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공민왕부터 공양왕까지 (개혁과 멸망기)

공민왕 (재위 1351~1374)
반원(反元) 정책을 추진하며 내부 개혁에 힘쓴 왕입니다. 북방 영토 회복을 시도했고 신돈을 등용하는 등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다만 외세와 권문세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왕 (재위 1374~1388)
공민왕의 아들이며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는 등 왕권이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실제 권력은 점차 이성계에게 넘어갔습니다.

창왕 (재위 1388~1389)
단명한 왕이며, 왕위 계승권조차 의미가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이미 왕권은 실질적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공양왕 (재위 1389~1392)
고려 왕조의 마지막 왕이며 이성계 일파에 의해 옹립된 뒤 결국 조선(1392년)으로 왕조가 변경되며 고려는 막을 내립니다.
고려 왕조 가계도의 특징과 해석
고려 왕실은 초기에는 왕건의 직계 혈통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왕위 선택에 있어서 혈통보다 강력한 군사·정치세력의 영향이 커졌습니다. 특히 무신정권기와 원 간섭기에는 권문세족, 군사세력,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왕위 계승이 왕실 내부 질서만으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줍니다.
- 왕권 강화 초기에는 왕건 계열이 중심이었고 중앙집권 제도가 강화되었음.
- 문벌귀족기에는 왕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으나 귀족세력의 대두로 왕권과 귀족권력 간 긴장이 발생했음.
- 무신정권기에는 군사세력이 왕권을 압도했고 왕은 명목상 존재로 전락.
- 원 간섭기에는 외세의 영향하에 왕권이 제약받고, 왕실 내부 권력구조가 더 복잡해짐.
- 고려 말 개혁기에는 왕권 회복을 시도했으나 이미 구조적 기반이 약화되어 왕조 교체로 이어짐.
이러한 가계 및 계보 구조는 고려 역사의 전개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단순히 왕위가 이어졌다는 사실뿐 아니라 권력구조의 변모와 함께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고려왕조의 계보도와 가계도를 살펴보면 단순히 연대기적 나열 이상으로 우리 역사의 권력구조 변화, 사회세력의 변모, 외세와의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왕권 강화기부터 문벌귀족 사회, 무신정권, 외세 간섭기를 거쳐 고려가 멸망에 이르기까지 왕실 가계와 왕권의 상태는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습니다. 각각의 왕위 계승은 단지 왕실 혈통의 문제를 넘어 당시 사회·정치세력의 균형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고려라는 왕조체제가 어떻게 변화하고 마감했는지를 계보와 가계도라는 렌즈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본 글이 고려왕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계보·가계 중심의 구조적 이해를 돕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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