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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 이름 역사

신라 왕조 계보, 왕의 순서 & 트럼프 금관 가격

by 니트롱겐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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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조 계보와 신라 왕의 순서 & 트럼프 금관 가격

신라는 한반도 남동부에 자리 잡은 고대 국가로,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거서간이 건국하여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기까지 약 992년 동안 이어진 장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신라 왕들은 56대에 걸쳐 왕위를 이어받았으며, 이는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단일 왕조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천 년에 가까운 통치를 이어간 왕조는 신라와 동로마제국 정도에 불과할 만큼, 그 장기성과 통치 체계의 정교함이 독보적이라 평가받습니다.

초기의 신라 왕은 단순히 ‘왕’이라 불리지 않았습니다. 사회 발전 단계에 따라 통치자의 호칭도 변했는데, 거서간(居西干) → 차차웅(次次雄) → 이사금(尼師今) → 마립간(麻立干) → 왕(王)의 순으로 변화했습니다. 이 호칭의 변천은 신라가 부족 연맹체에서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지증 마립간(재위 500~514)으로, 503년에 공식적으로 ‘신라왕’이라 자칭하며 왕권을 제도화했습니다.

트럼프 금관 선물한 것이 바로 이 신라왕조의 왕관이었죠.

또한 신라에는 3명의 여왕이 즉위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선덕여왕(27대, 재위 632~647) 은 한국사 최초의 여왕으로서 여성의 정치 참여의 상징이 되었고, 뒤이어 진덕여왕(28대)과 진성여왕(51대) 이 등장하여 신라 왕조의 말기까지 여성 군주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트럼프 금관 가격

위 신라왕과 여왕의 어진에 금관이 바로 이번 트럼프에게 선물한 금관이죠. 트럼프 금관 가격은 얼마나 할까요? 트럼프에게 선물한 금관은 경북 경주 하동민속공예촌 금속공예 장인 김진배 작가님이 아들과 함께 20일간 정성스레 만들어 낸 레플리카 금관입니다. 원본 금관은 국보 제188호로 지정된 신라 천마총 금관이죠.

무덤에 "총"이 붙는 것은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재나 위치로 이름을 만듭니다. 인터넷 밈에 트럼프가 죽으면 "천조총"을 만들어서 금관을 같이 묻어 줘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 누구 무덤인지 알 때는 "총"을 붙이지 않고 "릉"을 붙입니다. 천조릉이 되겠죠. 아무튼 이 금관의 가격은 실제로는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라서 정확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트럼프 금관가격에 대해 포스팅한 모 블로거가 금관에 사용된 금이 190돈에 이른다고 썼던데, 그건 훈장에 쓰인 금의 함량이라, 해당 블로거의 분석은 애시당초 처음부터 틀린 가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엉터리 가짜 정보를 포스팅하고 그걸 아무 생각 없이 죄다 베껴서 챗지피티에 돌려댔으니, 틀린 정보만 넘쳐납니다. 금관에 사용된 금이 도금인데 함량이 266돈이랍니다. 말도 안 되죠. 도금 무게가 1kg이 넘으면 저 금관 머리에 쓰면 목 부러지겠습니다. 물론 진짜 순금으로 만들면 그 정도 금 함량은 되겠지만, 도금이란 말이죠. 실제로 천마총 금관무게는 금관 전체 무게가 1293g입니다. 그런데 1000g을 도금을 할바에야 그냥 순금을 쓰겠죠? 정말 말도 안 되는 정보가 넘쳐납니다. 한탄스럽네요.

그리고 뭐 루비가 쓰였다는데, 신라시대 금관에 사용된 보석은 옥입니다. 루비는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트럼프 금관 가격 관련 포스팅 글들 전부가 내용이 다 대동소이하네요. 하아~ 옥값과 세공비를 제외하고 도금에 사용된 금의 함량은

  • 2μm 도금 (14~27g 사용) → 약 147만~284만 원
  • 5μm 도금 (27~68g 사용) → 약 284만~714만 원
  • 10μm 도금 (54~108g 사용) → 약 567만~1,134만 원

실제 제작에 사용된 도금 두께가 5μm 내외라고 가정하면, 천마총 금관의 금 함량은 약 30~70g, 즉 3백만~7백만 원 상당의 금이 들어갔다고 추정됩니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저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예술에 가까운 작품은 제작자의 제작 가치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가격을 매기기가 힘들죠. 아무튼 금값만으로 따지면 1천만 원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신라 왕조 계보를 56대 전체 목록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신라 왕조 계보


신라 초기 왕조 (거서간·차차웅·이사금 시대, 박·석·김씨 3성 교대 통치기)

  1. 박혁거세 거서간 (재위 BC57~4) - 신라 건국 시조, 박씨의 시조
  2. 남해 차차웅 (재위 4~24) - 혁거세의 아들
  3. 유리 이사금 (재위 24~57) - 남해의 아들
  4. 석탈해 이사금 (재위 57~80) - 석씨 왕통의 시조
  5. 박파사 이사금 (재위 80~112) - 유리의 아들
  6. 지마 이사금 (재위 112~134) - 파사의 아들
  7. 일성 이사금 (재위 134~154) - 가계 불명확
  8. 아달라 이사금 (재위 154~184) - 일성의 아들
  9. 석벌휴 이사금 (재위 184~196) - 탈해의 후손
  10. 석내해 이사금 (재위 196~230) - 벌휴의 아들
  11. 석조분 이사금 (재위 230~247) - 내해의 아들
  12. 석첨해 이사금 (재위 247~261) - 조분의 동생
  13. 김미추 이사금 (재위 262~284) - 김알지의 5대손, 김씨 최초의 왕
  14. 석유례 이사금 (재위 284~298) - 조분의 서자
  15. 석기림 이사금 (재위 298~310) - 조분의 후손
  16. 석흘해 이사금 (재위 310~356) - 내해의 손자

신라 중기 왕조 (마립간 시대, 김씨 왕통 확립기)

  1. 김내물 마립간 (재위 356~402) - 중앙집권 강화, 김씨 왕통 본격화
  2. 김실성 마립간 (재위 402~417) - 내물왕의 조카
  3. 김눌지 마립간 (재위 417~458) - 내물왕의 아들
  4. 김자비 마립간 (재위 458~479) - 눌지왕의 아들
  5. 김소지 마립간 (재위 479~500) - 자비왕의 아들

신라 후기 왕조 (‘왕’ 칭호 사용 시작, 불교 공인기)

  1. 지증왕 (지대로 마립간) (재위 500~514) - ‘왕’ 칭호 첫 사용, 국명 ‘신라’ 확정
  2. 법흥왕 (모즉지 마립간) (재위 514~540) - 불교 공인, 율령 반포, 금관가야 병합
  3. 진흥왕 (삼맥종) (재위 540~576) - 영토 최대 확장, 화랑도 창설
  4. 진지왕 (사륜) (재위 576~579) - 진흥왕의 아들, 국정 혼란으로 폐위
  5. 진평왕 (백정) (재위 579~632) - 장기 재위, 백제·고구려와 대립
  6. 선덕여왕 (덕만) (재위 632~647) - 최초 여왕, 첨성대 건립, 자장의 불교 개혁
  7. 진덕여왕 (승만) (재위 647~654) - 당나라와 외교 강화, 삼국 통일 기반 마련

통일신라 왕조 (삼국통일~중대 안정기)

  1. 태종 무열왕 (김춘추) (재위 654~661) - 신라 최초 진골 왕, 삼국통일의 주역
  2. 문무왕 (김법민) (재위 661~681) - 백제·고구려 정복 완수, 해상방어 강화
  3. 신문왕 (김정명) (재위 681~692) - 중앙 귀족 견제, 국학 설립
  4. 효소왕 (김이홍) (재위 692~702) - 신문왕의 아들, 통치 안정화
  5. 성덕왕 (김융기) (재위 702~737) - 당과 외교 강화, 민생 안정
  6. 효성왕 (김승경) (재위 737~742) - 성덕왕의 아들
  7. 경덕왕 (김헌영) (재위 742~765) - 한화정책 추진, 국호·지명 한자화
  8. 혜공왕 (김건운) (재위 765~780) - 경덕왕의 아들, 귀족 반란으로 피살

하대 왕조 (귀족 권력 강화, 분열기)

  1. 선덕왕 (김양상) (재위 780~785) - 왕권 회복 시도, 원성왕에게 왕위 계승
  2. 원성왕 (김경신) (재위 785~798) - 독서삼품과 실시, 문무 중심 행정 개혁
  3. 소성왕 (김준옹) (재위 799~800) - 원성왕의 손자
  4. 애장왕 (김청명) (재위 800~809) - 원성왕 증손, 내란 진압
  5. 헌덕왕 (김언승) (재위 809~826) - 중앙 통제 강화
  6. 흥덕왕 (김수종) (재위 826~836) - 당과 무역 활성화, 청해진 설치
  7. 희강왕 (김제륭) (재위 836~838) - 원성왕의 손자, 귀족 반란 진압 중 피살
  8. 민애왕 (김명) (재위 838~839) - 반란으로 단명
  9. 신무왕 (김우징) (재위 839) - 원성왕의 후손, 3개월 만에 사망
  10. 문성왕 (김경응) (재위 839~857) - 지방세력 통제, 불교 진흥
  11. 헌안왕 (김의정) (재위 857~861) - 문성왕의 동생, 불교 중흥
  12. 경문왕 (김응렴) (재위 861~875) - 설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
  13. 헌강왕 (김정) (재위 875~886) - 최치원 등 문신 등용, 문화 부흥
  14. 정강왕 (김황) (재위 886~887) - 경문왕의 차남, 단명
  15. 진성여왕 (김만) (재위 887~897) - 여왕 재위기, 신라 쇠퇴의 시작

신라 말기 왕조 (혼란기, 후삼국 분열기)

  1. 효공왕 (김요) (재위 897~912) - 진성여왕 뒤를 이어 즉위, 왕권 약화
  2. 신덕왕 (박경휘) (재위 912~917) - 박씨 왕통 복귀, 헌강왕의 사위
  3. 경명왕 (김승영) (재위 917~924) - 신덕왕의 아들, 지방 반란 진압 실패
  4. 경애왕 (김위응) (재위 924~927) - 견훤에게 피살
  5. 경순왕 (김부) (재위 927~935) - 신라 마지막 왕, 고려에 항복 후 왕조 종말

신라 왕실 계통 정리 요약

  • 박씨 왕통: 1대~3대, 5~7대, 13대, 17세기 이후 53대 신덕왕 복귀
  • 석씨 왕통: 4대, 9~12대, 14~16대
  • 김씨 왕통: 13대, 17대 이후 대부분 계승
  • 여왕 재위: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
  • 중앙집권화 시점: 지증왕 이후
  • 삼국통일 완성: 문무왕 시기(676년)
  • 신라 멸망: 935년, 경순왕 항복

결론

신라 왕조의 천 년 역사는 단순한 연속된 왕들의 이름을 넘어, 한반도의 정치·문화·사회 구조를 형성한 핵심적인 시대였습니다. 부족 연맹체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제사적 통치자에서 관료 행정군주로 발전하며, 삼국을 통일하고 불교를 국교로 삼아 문화를 꽃피운 왕조였습니다. 그러나 하대에 들어 귀족 중심의 권력 분열, 농민 봉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인해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며 결국 고려에 흡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왕들은 각 시대마다 국가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며 한국사의 근간을 이룬 인물들이었습니다. 천 년의 세월 속에 ‘삼국통일의 이상’과 ‘불교문화의 황금기’, 그리고 ‘여성통치의 시작’을 보여준 신라는 지금까지도 동양사에서 보기 드문 장기 왕조의 모범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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