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김씨 항렬표 - 문숙공파, 문정공파, 대동 항렬 돌림자와 유래의 모든 것
광산 김씨의 시조와 본관의 기원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우리나라에서 유서 깊은 명문가로 손꼽히며, 시조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다. 김흥광은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자 신라의 멸망을 예감하고 경주를 떠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당시 무진주(武珍州) 서일동으로 은거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후손을 이루었고, 후에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의 봉호를 받았다. 그 후손들이 그의 거주지를 본관으로 삼아 광산(光山)이라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김흥광의 후손들은 고려 시대 초부터 문무를 겸비한 관료로 성장하였으며, 특히 고려 평장사(平章事)를 8명이나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성리학의 중심 가문으로 자리 잡아 예학(禮學)의 기틀을 세운 가문으로 존경받았다.
광산 김씨의 역사적 상징은 단순한 명문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은 예의와 충절, 학문의 전통을 1,200년 가까이 이어온 가문으로, 한국의 유교적 가치와 도덕정신을 대표하는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광산 김씨의 분파 형성 과정
광산 김씨는 세대가 깊어지며 여러 파로 갈라졌다. 대표적으로 문정공파(文正公派), 문숙공파(文肅公派), 양간공파(良簡公派), 낭장공파(郎將公派), 사온직장공파(司醞直長公派)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문정공파와 문숙공파는 가장 중심이 되는 계파로, 학문과 정치, 충절의 전통을 계승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광산 김씨는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항렬(行列)이라는 제도를 엄격히 유지하였다. 항렬은 세대별 이름에 일정한 돌림자를 넣어 가문의 세대와 혈통을 명확히 구분하는 체계로, 가문의 정통성과 질서를 상징한다. 이 항렬자들은 단순히 이름의 일부가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정신적 유산으로 간주된다.
광산 김씨 항렬표의 구조
광산 김씨 전체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광산 김씨 대동항렬(大同行列)은 모든 분파의 기본 광산 김씨 항렬표가 된다. ‘대동’이란 말은 ‘모든 파가 함께 쓰는 공통 항렬’이라는 뜻으로, 파별 항렬표는 여기에 기초하여 일부 변형된 형태로 발전했다.
광산 김씨 대동 항렬표는 31세부터 50세까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 31세 진(鎭)
- 32세 택(澤)
- 33세 상(相)
- 34세 기(箕)
- 35세 재(在)
- 36세 현(鉉)
- 37세 영(永)
- 38세 수(洙)
- 39세 용(容)
- 40세 중(中)
- 41세 선(善)
- 42세 순(淳)
- 43세 동(東)
- 44세 환(煥)
- 45세 규(奎)
- 46세 용(鏞)
- 47세 연(淵)
- 48세 식(植)
- 49세 형(炯)
- 50세 곤(坤)
이 항렬은 광산 김씨의 모든 파가 세대별 이름에 돌림자로 사용하며, 예를 들어 43세 후손은 이름 중에 ‘동(東)’자를, 44세는 ‘환(煥)’자를 사용한다. 항렬은 조상의 뜻과 가문의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이기 때문에, 이름 짓기에서도 이를 철저히 준수한다.
광산 김씨 문정공파(文正公派) 항렬표 인물
문정공파는 광산 김씨의 가장 중심적인 계파로, 시조 김흥광의 후손 가운데 김광세(金光世)를 중시조로 삼는다. 김광세는 고려 중기 인물로, 명문 관료 집안의 기틀을 세웠다. 문정공파의 이름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정승을 지낸 김국광(金國光, 좌의정, 광산부원군)의 시호 ‘문정(文正)’에서 비롯되었다.
문정공파의 항렬은 대동항렬을 그대로 따르며, 36세부터 다음과 같다.
- 36세 현(鉉)
- 37세 영(永)
- 38세 수(洙)
- 39세 용(容)
- 40세 중(中)
- 41세 선(善)
- 42세 순(淳)
- 43세 동(東)
- 44세 환(煥)
- 45세 규(奎)
- 46세 용(鏞)
- 47세 연(淵)
- 48세 식(植)
- 49세 형(炯)
- 50세 곤(坤)
문정공파는 특히 조선 예학의 중심 가문으로 발전하였다. 대표 인물로는 김장생(金長生)이 있다. 그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예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사계(沙溪)’라 불렸다. 그의 저서 《가례집람(家禮輯覽)》은 조선 예학의 교과서로, 오늘날까지 유교 예법의 기준으로 전해진다.
그의 아들 김집(金集)은 대제학을 지내며 부친의 학문을 계승하였고, 부자 나란히 문묘에 배향된 전무후무한 영예를 얻었다. 또한 김만기(金萬基)와 김만중(金萬重) 형제는 각각 대제학과 문학가로 활약하였다. 김만중은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저술하며 한국 고전문학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다.
문정공파는 조선시대 265명의 문과급제자 중 100여 명이 속할 만큼, 학문과 관직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가문이었다.
광산 김씨 문숙공파(文肅公派) 항렬표 돌림자
문숙공파는 문정공파와 나란히 광산 김씨의 핵심 계파 중 하나로, 시조는 문숙공 김익겸(金益兼)이다. 그는 조선 인조 시절 광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나라의 충신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시호 ‘문숙(文肅)’은 문무를 겸비한 덕행을 기린 것이다.
문숙공파의 항렬은 대동항렬을 기반으로 하면서 일부 세대의 이름자에 고유한 돌림자를 사용한다.
- 36세 호석(鎬錫)
- 37세 원한(源漢)
- 38세 식영(植榮)
- 39세 희광(熙光)
- 40세 중성(中聲)
- 41세 선(善)
- 42세 순(淳)
- 43세 동(東)
- 44세 환(煥)
- 45세 규(奎)
- 46세 용(鏞)
- 47세 연(淵)
- 48세 식(植)
- 49세 형(炯)
- 50세 곤(坤)
이 항렬은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며, 후손들은 ‘호(鎬)’ ‘원(源)’ 등의 글자에 담긴 뜻처럼 근본과 성실, 학문의 깊이를 상징한다. 문숙공파는 ‘충효(忠孝)’와 ‘예학(禮學)’의 전통을 중시하며, 가문의 정통을 계승하기 위해 지금까지 항렬을 정확히 이어오고 있다.
문숙공파에서는 조선 중기 예조판서,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김중성(金中聲),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金德齡) 등의 인물이 유명하다. 또한 문숙공파는 일제강점기에도 학문과 독립운동에서 활약한 후손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광산 김씨의 주요 세거지
광산 김씨는 전국적으로 세거지가 넓게 퍼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지역은 다음과 같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김장생의 학문적 본거지로, 사계종택이 위치한다.
-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 시조 김흥광이 은거한 곳으로, ‘평장동’이라는 지명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성남시 수정구 금광동,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 양주시 주내면 마전리 등 경기도 일대에 다수 분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덕진면, 서호면 일대 – 광산 김씨의 중심 세거지 중 하나로, 종중사와 재실이 밀집되어 있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 – 조선시대 예학의 중심지로, 김장생 학맥의 후손이 세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제주 성산읍 난산리 등에도 분파의 후손들이 정착하였다.
광산 김씨의 주요 인물과 가문 계보
광산 김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다수의 문신, 무신, 학자, 충신을 배출했다. 그 대표 인물들을 계보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김정(金鼎) – 고려 시대 삼중대광(三重大匡), 가문의 기반을 세운 중시조.
- 김국광(金國光) – 조선 초기 좌의정, 광산부원군. 시호는 문정공으로 문정공파의 근간.
- 김장생(金長生) – 사계(沙溪)로 불리며 예학의 대가. 《가례집람》 저자.
- 김집(金集) – 김장생의 아들, 대제학. 부자 나란히 문묘에 배향된 유일한 사례.
- 김만기(金萬基) – 숙종대의 대제학, 숙종의 장인으로 인선왕후의 부친.
- 김만중(金萬重) –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집필한 문인.
- 김덕령(金德齡) –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의병활동 중 순절.
- 김양택(金陽澤) – 대제학, 영의정, 3대 대제학 가문을 완성.
- 김천택(金天澤) – 《청구영언》의 편찬자, 조선 후기 가곡의 정립자.
- 김영수(金永壽) – 고종 때 예조판서·대제학을 지낸 학자.
이처럼 광산 김씨는 문(文)과 무(武), 충(忠)과 효(孝)를 모두 아우르는 가문으로, 조선의 정치, 문학, 학문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 광산 김씨 문과급제 현황
광산 김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65명,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인선왕후)을 배출하였다. 이는 조선 500년 역사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인재 배출 기록이다.
계파별 문과급제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문정공파 : 29명
- 문숙공파 : 25명
- 양간공파 : 91명
- 낭장공파 : 6명
- 사온직장공파 : 25명
- 기타 소파 : 약 89명
이러한 수치는 단순히 가문의 인재 수를 넘어, 조선 시대 관료 체계와 학문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광산 김씨의 본관 변천사
광산(光山)은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로, 신라시대에는 도독부가 설치되었고, 고려 태조 때 광주(光州)로 개칭되었다. 이후 15세기에는 광산현(光山縣)으로 강등되었다가, 연산군 때 주(州)로 환원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관할의 광주군이 되었으며, 1935년에는 광산군으로 승격, 1988년에는 광주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날의 광주광역시 광산구(光山區)가 되었다.
이 본관의 역사는 곧 광산 김씨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 명칭 속에는 조상들의 터전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결론
광산 김씨는 단순한 성씨가 아니라 한국의 유교적 정신과 역사적 정통성을 대표하는 가문이다. 시조 김흥광에서부터 문정공 김국광, 문숙공 김익겸, 사계 김장생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혈맥은 학문, 도덕, 충절의 맥을 1,200년 넘게 지켜온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문정공파와 문숙공파의 항렬은 세대 간의 유대를 상징하며, 각 세대가 이름 속에 조상의 뜻을 새기고 살아가는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대동항렬표는 단순한 돌림자가 아니라, ‘가문의 정신적 나침반’이다.
오늘날에도 전국 각지의 광산 김씨 종중은 매년 시향을 올리며 선조의 얼을 기리고 있으며, 세거지마다 재실과 종중회관이 남아 있어 1천 년 역사의 숨결을 잇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항렬은 변하지 않는 혈통의 언어이며, 그것이 바로 광산 김씨의 뿌리이자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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